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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삼일절에 생각나는 시

최고관리자 0 1,973 2018.02.27 07:25
이상화 (李相和)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한용운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 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 (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 (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광야(曠野)

             이 육 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 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
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
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
)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서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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