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2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호이고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었다. 그 당시 여성이 이름 · 호 · 자를 고루 갖춘 경우가 드물었는데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바로 여성으로서 대우를 그만큼 받았다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명망이 높았던 초당(草堂) 허엽(許曄)이었다. 그녀는 위로 오빠 허성(許筬), 허봉(許)을 두었다. 두 오빠도
중요한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상당한 명망을 얻고 있었고, 동생 허균도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사의 기질을
보여 촉망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 허씨 집안을 모두 부러워했고 3허(三許)니 4허(四許)니 일컬으며 형제 시인으로 꼽았다.
그녀는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장편 시를 지었다. 이 글은 저 하늘의 신선이 산다는 백옥루에 대해 상상을 동원해 지은 것이다. 이 글이 언젠가부터 서울 장안에 나돌아 그녀의 시재는 더욱 인정받았다. 나중에
정조도 이를 읽고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풍부한 정감은 그때그때 곧바로 시로 표현되었다. 그녀가 이렇게 시를 쏟아내면, 그녀보다 여섯 살 아래인 허균은 이를 애송했고 뒷날 이 시들을 고스란히 옮겨 적어 후세에 전했다.
그녀는 안동 김씨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으며 남편은 기방출입을 했다. 이에 그녀는 달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거나 이불을 둘러쓰고 가슴을 태우거나 혼자 시를 읊으며 한을 노래했다.
규원(閨怨)-‘규방의 원망’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 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집니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 앉네
거문고 한 곡조 임 보이지 않고
연꽃만 들못 위에 떨어지네
- 《허난설헌집》
다행이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을 두었다. 남편에 대한 애정을 자식들에게 옮겨 정성을 쏟았고 어린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위로를 받았으나 두 자식이 채 봉오리를 맺기도 전에 해를 연이어 죽은 것이다.
곡자(哭子)
지난 해엔 귀여운 딸을 잃었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
응당 언니 아우의 혼들이 알아
밤마다 서로 손잡고 놀아라
그녀의 불행은 계속 꼬리를 이었다. 남편의 방탕은 조금도
쉴 줄을 몰랐다. 그리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던 친정집에도 풍파가 연달아 이어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주에서 객사했고 이어 오라버니 허봉은 이이의 잘못을 들어 탄핵했다가 갑산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허봉은 2년 뒤 풀려나 백운산, 금강산
등지로 방랑생활을 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병이 들어 서울로 돌아오다가 금화 생창역에서 아버지처럼
객사하고 말았다.
이런 친정의 슬픔은 그녀를 더욱 외롭게 했고, 자신의 시재를 알아주었던 인물이 하나씩 사라지는 데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리하여 더욱 감상과 한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번은 ‘삼한(三恨)’, 곧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첫째는 바로 그녀가 시재를 널리 뽐낼 수 없는 좁은 풍토를 안타까워한 것이고, 둘째는 남성으로
태어나 마음껏 삶을 노래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셋째는 그녀의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더욱 방탕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녀는 스물세 살에 어머니의 초상을 당해 친정에 가 있을 때 꿈을 꾸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저 신선 사는 곳에 올라 노닐면서 온갖 구경을 다 하다가 한 줄기 붉은 꽃이 구름을 따라 날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꿈에서 깨자 곧 “붉은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가 차가운 달에 떨어졌네”라는 시를 지어 읊었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읊조린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고, 그 죽음의 형상은 곧 신선의 세계였다. 그녀는 많은 한과 원망을
가슴 가득히 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사후에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리다
그녀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사람은 허균이었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모아 베껴 세상에 소개했다. 생전에 넓은 중국에 시명을 날리지 못한 것을 한탄한 누이를 위해 허균은 그녀의 시집을 중국 사신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그녀의 시는 중국에 널리 소개되었고, 중국의 여류시인들은 앞다투어 그녀의 시를 애송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그녀의 시는 시화(詩話)나 시평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어떤 시화에서는 격조면에서 허봉이나
허균의 시가 모두 그녀의 시에 미치지 못한다고 극찬을 했다. 그녀의 시가 이렇게 높이 평가 받자, 허균의 정적들은 허균이 그녀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지은 시를 누이의 시라고 세상을 속였다고 써대기도 했다. 특히 허균이 한글로 《홍길동전》을 써서 미움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죽자, 많은
정적들은 허균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이 말을 그럴듯하게 날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의 안목을 갖춘 사람들은 위의 말처럼, 그녀의 시를 오히려 허균보다 윗자리에 놓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여류들, 곧 신사임당, 황진이, 옥봉 이씨, 계생
등을 여류시인으로 꼽으면서 허난설헌을 최고로 보았다.
뒷날 허균은 부안의 기생으로서 뛰어난 시재를 보인 계생을 극진히 사랑했다. 계생에게서 누이의 잔영을 본 것이다. 계생 또한 허균의 시를 좋아했고, 따라서 허난설헌의 시도 남달리 아꼈을 것이다.
1. 기하곡
2. 빈녀음
3. 송하곡적갑산
4. 규정(閨情)
5. 채련곡
6. 고객사
7. 염지봉선화가
8. 기부강사독서
9. 강남곡
10. 규원(閨怨)
11. 곡자(哭子)
12. 사시사(四時詞)-춘사
13. 사시사(四時詞)-하사
14. 사시사 (四時詞)-추사
15. 사시사 (四時詞)-동사
16. 동선요
17. 감우(感遇1)
18. 감우(感遇2)
19. 감우(感遇 3)
20. 감우(感遇 4)
21. 봄비(春雨)
22. 모춘(暮春)
23. 야야곡
24, 효심아지체
25. 망선요

